또 한명의 리더..

중앙일보가 변할지, 우리의 희망이 변할지.

MBC와 싸우려면, 비록 “중앙”일보지만, 큰 힘이 필요했던 것일까? 김재철도 버텨냈는데, 더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앞으로 5년 더는 힘들다고 생각한 것일까?

손석희

무엇이 되었건, 변화를 선택했고, 이제 그 변화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보면 된다.

가시는 길, 힘차게 그리고 뚜렷하고 당당하게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제 역할 여기까지…” 손석희, 울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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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량형, A.D/B.C. 그리고 壇紀

내가 기억하기로 1978년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같이 9시 뉴스를 보면서, 미국이 한국에게 도량형 통일을 요구한다고. 한국에게 국제 표준을 따르라고 했던 것으로. 그러면서  “천리” 같은 거리의 단위를 필두로 “쌀 한 되”, “쌀 한 섬”, “깻잎 한 톳”, “달걀 한 줄”, “두부 한 모” 들을 국제 표준에 맞춰서 gks 단위로 쓰자고.

당시, 국문학계 등 한글 관련 및 이런 저런 전통/민속 관련 단체들에서 반대를 했던 것으로 안다. 이런 도량형의 단위에는 그 나라 고유의 정서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음식을 만들때 쓰는 표현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서양 음식은 “~ 한 클 술 넣으시고”, “~ 컵 한잔 넣으시고” 이런 표현이 많은 데, 우리는 “물을 자작 자작하게 넣어서”와 같은,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그 뜻을 “아는”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는 표현을 쓴다.

얼마전에 마켓에 갔다가, 캐시어가 내가 넣은 깻잎이 “몇개”냐고 묻기에, 이해가 되지 않아서 “두 톳”이라고 했다. “한 개”라고 하면, 깻 잎 한 장 한장을 한개라고 하는지, 묶음이 한개인지 구별이 되질 않는다. 나더러 그런 표현 쓰는 사람 처음이란다.

이런 표현은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느끼는 크기와 거리, 그리고 무게감을 잘 담고 있지만, 반면 번역이 참 힘들다. 더군다나 요새처럼 국제적으로 왕래가 활발한 시기엔 gks 단위처럼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근데, 이곳에 살면서 참 배신감을 느낀다.
정작 우리 나라에 gks의 생활화를 요구한 미국은 정작 왜 파운드, 인치, 피트 같은 단위를 쓰는가? 더군다나 이 단위의 문제점은 서로 간에 값이 정확하게 나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산이 당연히 느릴 수밖에 없다.

정작 우리 나라에는 국제 표준을 요구하고 자신들은 자신들의 도량형을 쓰는 나라.

또 다른 문제를 보자. 우리는 서기를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A.D.와 B.C.

B.C.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Before Christ의 약자.
근데 A.D.는 잘 모른다. 그래서  wikipedia를 찾아 봤다.

Anno Domini http://en.wikipedia.org/wiki/Anno_Domini

즉 In the year of the Lord

Lord는 군주지만, the Lord면 “주”, 즉 Christian God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주의 해”라는 뜻이다.

즉 우리 민족의 세계관과 완전히 배치하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이 줄여버린 역사로도 5000년인 나라에서 2000년이 기준이 된다니.
이런 서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2000년은 굉장히 긴 시간인양 잠재 의식속에 여기고 있다.
물론 우리도 그렇다. 20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삶을 상상해 보자. 국사책에서 배운거는 지우고 그냥 느낌 만으로. 뭔가 좀 원시적일거 같지 않은가?
이런 느낌이 드는게 과연 나 뿐일까? 왜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될까? 내 생각엔 바로 A.D.와 B.C.의 표현이 은근히 강요하는 세계관 때문이다. 2000년 전의 시간이 기준이 됨으로써, 그 기준점이 굉장히 오래된 것처럼 여겨지고 그게 마치 시간의 시작인양 느껴지는 것이다.

자.. 만약 어려서부터, 서기가 아니라 단기를 더 자주 쓰고 더 익숙해진다면 우리의 시간에 대한 “느낌”은 어떻게 바뀔까?
일본도 여전히 자체의 시간을 기술하고 있다. 물론 서기도 쓰면서. 아마 영국도 그러지 않을까? 우리도 단기를 좀 더 앞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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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 원장님의 글이랍니다.

이 블로그에..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님의 글을 벌써 한 두어번 언급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다른 사이트에서 본 글을 여기에 적어보려고 한다.

권위와 권위적이라는 것.
권위가 있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만, 권위주의적인 사람에겐 이런 글이 나올 수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럼 이제부터시작.

———————

저는 우여곡절 끝에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잊을 수 없는 한 환자가 있죠.

40대 초반의 여자였는데 위암이었죠.
하지만 이게 전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어요.

CT가 그때만 해도 3cm 단위로 잘라져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암이 작으면 잘 보이지 않죠. 일단 보고를 드려야 했죠.

아침에 주임과장에게 이런 환자가 있었고
전이가 확인이 안됩니다 하고 보고를 드렸더니
배를 먼저 열어보고 전이가 되어있으면 닫고,
안 되어 있으면 수술을 하라고 하더군요.

근데 환자 보호자에게 동의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런걸 환자에게 이야기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가족과 보호자를 이야기해봤더니 남편은 죽었고,
시댁식구들은 연락이 끊어졌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어 본인에게 직접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고등학교 아들과 중학교 딸이 하나 있는데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어떡합니까.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해야 합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술 날짜를 잡았죠.

헌데 배를 열고 보니까 저희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가슴부터 배까지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게 되어있더군요.

작은 암세포로 전체가 퍼져있었어요. 너무 심각했던 거죠.
바로 닫고 수술실을 나왔습니다. 그런 경우 대개는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하고 다시 환자에게 가려고 하는데
저는 그 장면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창 밖으로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고
가습기에서 희뿌옇게 수증기가 나왔고
침대 옆에서 아이 둘이서 검정색 교복을 입고선
엄마 손 하나를 둘이서 잡고 서 있더군요.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느낌 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눈이 마주치자 환자가 저를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해요.

환자는 알고 있었던 거죠.

수술을 했더라면 중환자실에 있었을 텐데 일반 병실이니까
암이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옆에는 지금 애들이 있으니까
지금은 얘기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아니나 다를까 수술 후 급속도로 나빠져서
퇴원도 못하고 바로 돌아가셨죠.
사망을 앞두고 며칠 동안은 아이들이 학교를 안가고
병원을 왔는데 항상 그 자세였어요.
손을 잡고 아이와 함께 셋이서 서서 있었죠.

우리 외과 의사들은 보통 회진을 하면
아침 식사를 몰래 숨어서 하고 그랬거든요.
아침 먹었으면 아주 선배들에게 혼났어요.
신참 의사를 3신이라고 하거든요.

잠자는 덴 잠신, 먹는 데는 걸신,
일 못하는 데는 병.신. 어쨌든 하는 것도 없다고
먹는 거 보이면 혼나고 그랬어요.
그래서 회진 돌고는 수업 들어가기 전에 컵라면 먹고 그랬죠.

그때 외과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었죠.
그랬던 우리들 중 하나가 돌아가면서
그 병실에서 아이들을 데려와서 같이 라면을 먹고는 했었어요.

하지만 이건 사실 특별한 선의는 아니었어요.
특별한 선의였다면
제 시간에 제 돈으로 아이들에게 맛있는걸 사주었겠죠.
하지만 제약회사에서 가져온 라면을,
인턴이 만들어 놓은 라면을 같이 먹었었죠.
후륵 후르륵 먹으면서
아이들한테 이런 저런 대화를 했었을 거 아닙니까.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요.

‘아이들에게 대학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나도 힘들었다’ 뭐 이런 얘기를 했었나 봅니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했었나 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제가 사실 기억을 못하고
있었던 것을 다른 사람에 의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들의 엄마인 환자는 거의 임종이 다가왔습니다.

이때 의사가 할 일은 사망 실시간이 임박하면 사망확인하고
시간 기록하고 진단서 쓰는 게 다입니다.

간호사한테 정말로 연락이 왔어요.

돌아가시는걸 지켜보면서 저와 간호사는 서 있었죠.
두 세 차례 사인곡선을 그리다가 뚜뚜.. 하면서 심전도가 멈췄는데
아이들은 또 예의 그 모습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죠.

이후의 상황은 대충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울부짖고, 간호사들이 떼어내고,
영안실에서 와서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로 데려가고..

저는 속으로 ‘이걸 어떻게 보지?’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울지 않고 가만히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아직 모르나 보다.
그래서 한 잠시 일분 기다렸어요.

그러다 아이의 어깨를 눌렀더니 엄마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요.
봤더니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옷의 절반이 눈물로 젖어 있더라고요.

돌아가신 것을 아는 거였더라고요.

저는 순간적으로 움찔했습니다.

그리고 서 있는데 그제서야 엄마에게 다가서서
왼팔로 목을 잡고 오른팔로 어깨를 안아요.

그리고는 엄마 귀에 대고 뭐라고 말했냐면..

엄마 사랑해요.. !’ 하고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수 많은 죽음을 목격했지만,
떠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 ‘사랑해요..’ 라는 말 안에는 떠나는 엄마에 대한 송별사 일수도 있고
위로일 수도 있고, 남겨진 자의 각오일 수도 있죠.

저는 많은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어떨 때는 제가 맡았던 환자가 하루에 5명이 돌아가신 적이 있었어요.
인간이 마지막 떠나는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직위? 돈? 그가 누구든,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그가 무엇을 가진 사람이든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에 하는 단어가 바로 ‘손’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진짜 내 마지막 순간에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것이죠.
하지만 실제로 어떻습니까.

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내일이 될지, 다음 주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올 것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때로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럼없이 상처 입히고,
더러는 외면하잖아요.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가장 위로 받을 수 있고
마지막에 위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생각해보면
집에 있는 가족과 아이들이죠.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보다도 금배지고,
좀 더 필요한 건 공천이고,
그보다 지금 빨리 필요한 것은 돈다발입니다.

어쨌든 이후 저는 안동 신세계 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계속 했지요.

근데 십여 년이 지나서..
간호사가 하루는 신부님이 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피 흘리는 신부님이 오셨나 보구나 했습니다.

제가 안동에서는 항문외과의로는 아주 유명해서
사실 경상도 지역 전체에서 거의 손꼽을 정도거든요.

신부님들이 보통 손님으로 위장해서
치료받으러 오시는데 그런 분이신가 하고
문을 열고 나가니 손님의 얼굴에 아우라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람의 얼굴의 빛깔과 때깔은 다르잖아요?

때깔은 돼지처럼 먹고, 색조 화장품을 바르면 좋아 집니다.
하지만 빛깔은 습관, 태도, 사고, 삶의 방식들이
지금까지 내 얼굴에 반영되어 반죽으로 나온 겁니다.

그 사람의 아우라는 사실상 그 사람에게 나쁜 습관,
나쁜 태도, 나쁜 성향이 거의 없었다는 얘깁니다.
놀라서 제가 ‘누구십니까’ 했더니
대뜸 ‘저를 모르십니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 고등학생이 저랍니다’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혹시나 잘못한 게 있나 뜨끔 하더라고요. (웃음)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눠보았더니
여동생은 교대를 가서 선생님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두 오누이가 곱게 잘 자랐죠.

그러면서 신부님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입장에서는 가혹하고 힘들겠지만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면
남겨진 아이들이 혹시나 잘못되면 어떡할까
하고 그런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저는 제가 그렇게 멋있는 말을 했는지도 몰랐어요.
그 말씀이 두 오누이가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된
가장 중요한 말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에 벼락이 떨어진 느낌이었어요.

제가 멋있는 말을 했구나 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무심코 한 말이었는데,
무심코 했던 작은 선의가 두 남매의 인생을 바꿨다는
생각을 했더니, 반대로 누군가를 절벽에서 밀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각자 서로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그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급은 위로만 올라가야 하고,
내가 많은 사람을 휘두를 수 있어야 하고,
그 힘은 점점 더 세져야 하죠.
하지만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영향력은 반드시 선한 것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무심코 한 여배우의 기사를 보고,
무심코 그 기사에 댓글을 달았는데,
하필 그 여배우가 그 댓글을 볼 수 있잖아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렇게 보편적인 악의는
누군가를 절벽으로 밀어낼 수가 있다는 겁니다.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한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고객을 기쁘게 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고객으로 하여금 진정성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웃음이 진심으로 자유에서 나와야 하고,
진실로 기뻐서 나와야 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에 두근거리십니까?

집에 놓고 온 아이의 얼굴을 생각하면 두근 두근하고
사랑하는 와이프, 남편의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설레십니까?

이러한 모든 것은 내가 주인이 되는 삶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쁨을
삶 속에서 계속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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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문명의 배꼽, 그리스 @chondoc 님의 책을 샀다.
표지

원래 난 그리스 문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뭐랄까.. 그냥 거리감이 있고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 챕터들의 제목이 범상치 않았다. 뭐랄까.. 박경철 원장님은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읽어내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생각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있을까 싶어, 집어 들었다.

Ch2-3

Ch 5-6-7

Ch8-9

제목들이 과거의 어떤 문명이 아니라, 현재의 것 같다.
그렇겠지.. 역사는 반복하는 것이니까. 근데 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과거의 역사로부터 그다지 배우지 못하는 것 같다.

어찌되었건.. 이제.. 서양 문명의 시작을 향해 들어가는 박경철 원장님을 따라 나도 한번 가보자.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와 사람들과 나도 대화를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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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어머니가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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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님 트위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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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련한 서해성 교수님의 3분 즉설

우리에게 진짜 우익이란 이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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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2부가 더 좋다..

얼마전에 이곳에서 만났는데. 옆에서 누가 비올라 가방 놓고 먹길래, 비올라 통이 하도 아이거 같아서 그것만 보다가 누구지? 하고 보니…
인사하고 요샌 어디서 연주하냐고 했더니, 뉴욕간다고..

뭐랄까..
우리가 그의 미디어에서 나온 모습만을 가지고 확신할 순 없지만, 참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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